
19세기말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이 그린 삽화 속 어린이 놀이문화와 복식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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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study surveys children's costumes and games from the 11 Genre paintings by Junkeun Kim in the book “Korean Games(Stewart Culin 1858-1929)”. The character of the general dress-costumes, games and the culture of life from the late 19th century in genre painting of Junkeun Kim are as follows. The study results on the games are as follow. The boy’s games are kite-flying, spinning tops, playing shuttlecock with the feet, blindman’s buff, yut(“Four-Stick Game”). Girl’s games are seesaw with board, blindman’s buff, marbles. Combined games are mount shoulder, sledge, tightrope walking for men with boy. The strengthen one’s body type were seesaw with board, tightrope walking, the compete score type were playing shuttlecock with the feet, marbles and the multi complex type were yut(“Four-Stick Game”), kite-flying. Through genre painting in the 19th century we know a boy’s ‘Jeogori ’and ‘Ba-ji’ were similar to a modern man’s and boy’s ‘Hanbok’ with a traditional method of wearing. We believe that the originality of a traditional costume was an unchangeable characteristic. Girl’s ‘Jeogori’ and ‘Chi-ma’ changed in length and width, and method of wearing; however, the basic shape did not change. The analysis for artist’s genre painting which was ordered by a foreigner and the late of 19th century’s children’s costume and game of life culture is useful to match the counters and show how to wear a modern Korean costume used to understand the ‘Hanbok’ and establish a costume of life.
Keywords:
genre painting, children’s costumes, Korean games for children키워드:
풍속화, 어린이 복식, 한국의 어린이 놀이1. 서 론
풍속화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사회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풍속, 취미, 일상생활의 모습을 소재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Doosan encyclopedia, 2013). 풍속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생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그림으로, 그 속에는 신앙, 종교, 정치, 생활, 사상 등 삶의 모습이 펼쳐져 있으며 당시 생활사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시대적 증거로서 조선시대에 가장 집중적으로 발달하였다(Chong, 1992). 풍속화는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읽게 해주는 기록으로, 풍속화에 등장한 현실의 세태와 민중 삶의 다양한 모습은 변혁기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검정해 낼 귀중한 문화 사료이므로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그 시대의 복식문화를 알 수 있다. 특히 조선 후기 풍속화는 조선시대 생활상과 복식문화에 대한 기초 자료를 제공함은 물론 당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선행연구 중 조선 후기 어린이 복식에 관한 연구는 Kim and Lee(2010)의 ‘조선 후기 아동복식에 대한 고찰’, Kim(2011)의 ‘개항기 이후 한국 아동복식 연구’, Ha(2000)의 ‘전통 어린이 복식에 관한 연구’ 등의 연구가 있으며, 성인복식의 연구가 분야별로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어린이 복식문화에 관하여 통시적으로 정리해 놓은 연구가 적은 편이다. 연구가 부족한 가장 큰 원인은 어린이 복식에 관한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고, 기록이나 유물들이 성인 중심으로 되어 있어 어린이에 관한 자료는 매우 단편적이라 수집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Kim, 2011). 어린이 관련 부족한 복식자료와 유물 속에서 그나마 풍속화는 사실적인 표현성과 통속성을 통해 어린이 복식과 어린이 생활의 일면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수단이 되므로 본 연구에서는 연구 자료로 선택하였다.
또한 풍속화에 표현된 놀이는 당시생활의 일부분이며, 놀이는 문화 속에서 인간이 생활을 영유하는데 중요한 행위유형으로 의미가 있으므로 풍속화 속에 나타나 있는 전통사회의 어린이 복식과 놀이문화의 특성은 어떠한가를 살펴보고자 본 연구에서는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19C말 조선 후기 당시 우리나라 어린이의 생활상인 놀이문화와 복식문화에 대한 특징을 고찰하고, 놀이문화와 복식문화의 기초자료를 제공함은 물론 어린이들의 생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2. 이론적 배경
2.1. 연구대상의 시대적 배경
본 연구의 참고자료는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그림이 삽화로 들어있는 ‘한국의 놀이’라는 책의 삽화 중 어린이가 등장하는 풍속화 그림들을 사용하고자 하며, 이 책은 조선이 국내적으로 복잡한 시기였던 1893년에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컬럼비아 박람회에 당시 펜실베니아 대학에 재직 중이던 스튜어트 칼린(Stewart Culin, 1858~1929)이 자신의 수집품인 동아시아의 놀이도구를 전시하고, 이 전시를 계기로 당시 중국과 일본을 포함해 한국의 놀이를 소개하는 책을 꾸미게 되었던 ‘한국의 놀이-유사한 중국, 일본놀이와 관련해서’이다(Stewart, 1895/2003). 이 책은 1895년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오백 부 한정본으로 출간하였으며, 기산 김준근의 22점의 컬러그림이 삽화로 사용되어져있다. 삽화가 그려졌던 19C말은 동아시아 삼국이 자본주의 물결을 타고 근대문화로 변화하려는 시기로 구미열강이 또다시 식민지 확대 정책에 힘을 쏟게 되고, 경제 발달에 따른 생산을 집중시키고 자본을 투자할 지역을 확보하려는 제국주의 시대의 여명기라 할 수 있다.
2.2. 어린이
‘어린이’는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로 대개 4, 5세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아이를 이른다(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1999). 어린이는 1920년 소파 방정환이 어린 아동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2015) 근대 이후 가장 널리 사용하는 단어이다. 어린이를 나타내는 말로는 아동, 어린아이, 어린이, 동몽 등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
아동은 신체적, 지적으로 미성숙한 단계에 있는 어린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현재에도 ‘어린이’와 더불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1999). 아동기는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거치는 첫 번째 단계로 시대에 따라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은 다양하게 변화됐지만, 한 집안의 대를 잇고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성인으로 성장해 간다는 점은 시대와 문화권을 초월한 공통점이다. 아동의 중요성과 아동을 대하는 사회적 시각은 복식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며 아동복에는 성인복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나 숨겨진 의미가 있기도 하다(Kim, 2011).
조선시대 아동은 가족세력의 확대이면서 가계계승자 확보이자 가족 노동력의 보장이었다(Kim & Lee, 2010). 전통적 사회에서는 아동을 동몽(童夢)이란 용어로 표현하였는데, 동몽기는 성인이 된 것을 상징하는 관례하기 전까지로 보고 있다. 사례편람에 의하면 한국 전통사회에서는 남자는 15세에서 20세 사이에 관례를 행하고 또 여자는 15세가 되면 관례에 해당하는 계례를 행한다고 한다. 아동기에 대한 생각은 현대와는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15세를 전후한 시기로 보고 있다(Lee, 2000).
본 연구에서는 이와 같이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용어들 중 ‘어린이’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풍속화 작품에 나타나는 어린이는 그 연령을 살펴보기가 어려우므로 본 연구에서는 관례하기 전까지의 아동을 어린이 복식의 연구대상으로 보고 어린이 구분이 애매한 경우에는 그림 속 인물의 머리모습과 복식을 보고 어린이로 간주하여 연구대상에 포함하였다.
2.3. 놀이
호이징가는 <호모 루덴스>에서 모든 문화가 놀이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 세세한 증거를 제시했다(Huizinga, 1938/1998). 그리고 ‘한국의 놀이’ 저자였던 스튜어트 칼린은 이보다 40년 앞서 놀이의 주술성을 언급하여, 놀이의 근원이 바로 인간이 불안 심리를 해소하기 위해 행하는 주술적 의식이라(Stewart, 1895/2003)고 하였다.
놀이는 어린이에게 생활 그 자체이자 최선의 교육방법이다. 어린이의 놀이는 남녀 어린이들이 공통적으로 즐기는 놀이와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남자, 여자놀이를 한다. 또한 놀이는 세시풍습으로 발전하여 성인과 어린이가 함께 즐기는 놀이가 되었다. 이렇게 성인과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어린이는 성인의 발전된 놀이 운영 전략을 배울 수도 있었다(Lee, 2000). 놀이는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만들어지고 행해진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역사의 산물이다. 조선시대 놀이유형은 활동형과 휴식형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양반 계층은 주로 휴양형과 관람형 여가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서민계층은 참여형과 활동형의 마당놀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서민들은 자연보다는 삶의 현장인 마당, 골목, 산과 계곡 등에서 여가활동을 하고 있는 반면 양반들은 비자연성의 방과 정원에서 기녀와 애정행각, 음주가무 등의 활동과 함께 자연을 감상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Sung, 2009).
조선시대 어린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모습에서 여자아이는 가정 밖에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Lee, 2000). 남녀 어린이들은 어릴 때 보통 함께 놀지만, 상류층에서는 여자아이들이 밖에 나가 남자아이들과 노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성이 다른 아이들은 일곱 살이 되면 자리를 함께하지 않아야 한다는 공자의 말씀이 지켜지고 있다(Stewart, 1895/2003). 민속놀이는 그 무엇보다 그 민족의 문화와 정신을 대표하고 있으며, Kim(1988)이 ‘우리의 전통놀이는 일과 놀이가 구별되어 있지 않고 무대와 관람객이 분리돼 있지를 않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본 연구에서는 연구자료의 풍속화를 통하여 19C 말의 어린이들의 일상생활 모습과 놀이문화를 조사하고자 한다.
2.4. 기산 김준근
기산 김준근은 1880년대부터 1900년 초기의 개화기에 주로 활동한 재야 풍속화가로 19C 말 서울, 부산, 원산, 제물포 등지를 돌아다니며 그 지방 민중들의 제반 생활 및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활약했던 한국의 풍속화가로 알려졌다(Chung & Choi, 2004). 대부분의 삽화 속 사람들은 기산이 살았던 지방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타내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유럽과 미주의 박물관, 국내 등에 걸쳐 대략 1400여 점이 전승되며 대부분 엽서 크기의 작은 그림에 주로 채색화이지만, 일부 수묵화로도 전해지며 그의 그림은 외국인의 요구에 부합해서 선택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일부를 제외한 당시의 민속이 총망라되어있으므로 19C 문화를 재구성하는 데에 절대적 필요한 자료이다. 특히 현대 민속문화를 문화콘텐츠로서 재창조하려는 데에서 중요한 자료적 의미를 지닌다(Lee, 2015).
기산 김준근은 1889~1890년에 부산에서 선교사 게일을 알게 되고, 1895년 미국인 선교사 존 게일이 원산에 체류하면서 <텬로력뎡>을 펴낼 때 삽화 42장을 그렸는데, 그의 삽화는 본문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모든 등장인물을 조선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하고 추측되기도 한다. 그리고 1882년 조미수호통사조약 체결 당시 미국의 제목이었던 로버트 슈펠트(1821~1895)가 고종의 초청으로 1886년 다시 조선을 방문했을 때 함께 온 그의 딸 메어리 슈펠트는 부산 초량의 김준근을 찾아가서 그림을 주문하였다고 한다. 프랑스 민속학 연구자 샤를 루이바라(1842~1893)는 1888년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행하면서 조선여행기를 <Tour du Monde>에 올리면서 김준근의 그림을 활용하였는데 이때 프랑스로 들어간 그의 그림은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1889년 개관)에 소장되어있다(“Kisan Kim”, 2016).
그가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한 것에 비하면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화가임에는 분명하다. 이는 그가 감상용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놀이·경직·공예·형벌·신앙·의식주·의례 등 생활 전반에 걸친 풍습을 주로 그렸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당시의 복식과 풍습 등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최근에 기산 김준근이 재조명되고 있다(Bak, 2015).
당시 서양인들은 사진기를 가졌음에도 그의 풍속화를 더 원하였는데 그 이유는 사진 한 장으로 사진 속 등장인물의 역할을 이해하기는 어려우나, 한 장의 그림화면에서 다양한 용도를 설명하며, 구체적이고 명확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을 더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 여인들의 생활모습을 아는 것은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기산의 그림은 여인들의 생활모습을 이해하기에 매우 유용하였다. 시대적 흐름을 자신의 그림 속에 반영하였고 관혼상제, 세시풍속, 신앙과 형별 등 다양한 소재인 19세기 일상사를 그림에 담은 백과사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소재의 풍속화 화가이며, 최초로 외국인에게 조선의 문화를 알린 사람이다(“Professional of Chosun”, 2010). 비록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다른 화가들에 비해 조명은 덜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세계 속 한국을 알리기에 충분했으며, 그의 그림들은 당시 유행했던 우리네 복식과 놀이, 풍습을 확인하는 자료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3. 연구방법
어린이 복식에 관한 연구는 주로 왕실이나 사대부 위주로 본 것이 많으며, 회화나 기록에 남아 있는 어린이의 기록이 많지 않고, 전세유물은 특수계층에 한정되어 있으며 출토복식 역시 성인복식이 대부분이므로 어린이 복식의 실물 자료를 많이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어린이 복식의 유물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아동 복식의 연구는 문헌이나 그림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풍속화나 기록화 등의 그림 자료에는 당시의 시대 상황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성인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림에 등장하는 어린이 조차 그림 속에서 주변인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Kim, 2011).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연구자료로 기산 김준근의 수많은 풍속화 중 김준근이 그렸다는 정확한 명시가 되어있는 ‘한국의 놀이’라는 책의 삽화 중 어린이 또는 어린이가 속한 11점의 그림을 선택하고 선행연구(Choi, 2012)에서 이미 분석하였던 성인남자 3명을 제외한 남자어린이 19명, 여자어린이 8명의 각각 인물들이 착용하고 있는 의복을 중심으로 의복의 형태분석 및 착용방법, 의복의 종류와 특성을 분석하여 조선 후기 당시의 어린이 복식의 원형과 특징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림 배경에 등장하는 생활모습 및 놀이도구 등도 분석하여 당시의 생활모습 즉, 놀이문화도 고찰하고자 하였다.
4. 결과 및 논의
4.1. 기산 작품
기산은 그림마다 제목을 그림 위에 한글로 표기해 두었으므로 기산이 표기한 제목대로 작품의 명을 사용하였다.
Fig. 1의 왼쪽에 꽹과리를 들고 고깔모자를 착용하고 옆의 상투머리 남자와 비교할 때 수염이 없어 미성년자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청색 저고리가 엉덩이길이로 직선 통소매 모습을 하고 흰색안감, 긴칼깃에 동정은 목 바로 아래에서 교차될 정도로 짧다. 오늘날 남자저고리보다 좀 더 감싸는 형태의 우임으로 여며져 있다. 흰색 바지는 녹색 허리끈과 무릎아래에서 행전으로 여미지고 흰색버선에 짚신을 착용하고 있다.
남자 어깨위에 무동 타는 남자아이는 머리를 뒤로 늘어뜨리고 빨간색 저고리는 허리를 덮는 길이이며, 분홍색포는 앞자락과 뒷자락이 날리는 모습에서 두 폭의 너비 차이가 녹색 전복과 비교할 때 많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옆트임 있는 소창의로 생각되며 무릎아래길이로 직선 통배래를 하고 있다. 포 소매끝 부분에는 흰색의 한삼이 있다. 포 위에 착용한 녹색전복은 뒷길너비가 앞길 한쪽의 너비에 비해 훨씬 넓게 표현이 되어 있어 옆트임만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전복은 Hong(2008)의 연구와 같이 조선 후기의 전복형태처럼 깃은 없고 목둘레가 파인형태를 나타내며 소창의를 살짝 덮는 길이를 하고 있다. 흰색바지는 청색끈으로 허리가 여며지고 무릎아래 부분은 흰색행전으로 여며져 있다. 발은 무동을 타고 있어 흰색버선 차림이다.
놀이의 소품으로는 고깔모자와 꽹과리, 채와 이등춤의 춤사위를 더 크게 나타내기 위해 한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Fig. 2는 썰매를 탄 사냥꾼들의 그림으로 스케이트와 썰매는 한국의 북쪽 지역에서 사냥꾼들이 사용하였으나 놀이도구로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았으며 당시 남자 아이들은 얼음위에서 눈썰매를 많이 탔다.
왼쪽의 미성년자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방한모 역할로 머릿수건 같은 것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저고리는 엉덩이길이로 저고리품과 소매통에 여유가 있으며 둥근 깃이 깊게 우임으로 여며져 있다. 고름은 확인할 수 없으며 다른 색상의 허리끈이 차가운 기운이 들어오지 않도록 상의를 한 번 더 여민 것 같이 매듭져있다. 옆 남자의 허리에도 허리 여밈 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썰매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옷자락의 나부낌을 막고 추위를 막아주며 활동성을 부여하기 위해 옷자락을 감발하던 착용법이 아닌가하고 추측해본다. 같은 색상의 바지는 무릎아래에서 행전으로 여며져 있고 다른 색상의 허리끈으로 바지허리를 여미고 있다. 겨울놀이라는 상황과 저고리의 허리끈을 고려해 볼 때 솜을 둔 저고리와 바지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두 사람은 모두 버선을 신고 눈신발을 착용하고 긴 지팡이 역할을 하는 깃발이 달린 창과 비슷한 막대를 양손으로 잡고 눈 위를 걷는 보조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눈신발은 오늘날 스키 플래이트처럼 당시의 다른 신발에 비해 길이가 길며 유선형으로 앞머리쪽과 뒤꼬리쪽 모두 가름한 모양이다. 발등 위부분에 신과 분리되지 않도록 두개의 끈이 지나가고 있다. 눈신발은 설말 또는 눈말이라고 불렸으며 사냥할 때 사용되던 매우 오래된 신이지만 어린아이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Stewart, 1895/2003).
Fig. 3은 연을 날리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 그림으로 연은 수백 년 전 일본과의 전쟁에 참가했던 한 장군이 연을 만들고 작은 등을 달아서 밤하늘에 이를 올려 보냈는데 패전으로 낙담해 있던 병사들이 새로운 별처럼 보이는 이것을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여 힘을 얻고 전투를 재개하였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놀이도구이다.
왼쪽에서 구경하고 있는 남자아이는 옆의 두 남자아이보다 어려 보인다. 머리는 길이가 짧은 듯 뒤로 여며져 말뚝댕기와 같은 것으로 묶어져 있다. 연갈색댕기에는 흰색 장식물이 달려있다. 자주색포는 옆트임, 뒤트임이 없는 두루마기로 추측되며 무릎아래 정강이길이에 소매통은 직선 배래로 적당한 여유를 가지고 뒷고대에 흰색동정이 나타난다. 흰색바지는 발목에서 대님으로 여며지고 흰색버선에 갈색 혜를 착용하였다.
중간 남자아이는 뒤로 땋아내린 머리끝에 댕기로 묶고 있는데 머리길이가 엉덩이 가까이 내려온다. 빨간색 저고리는 엉덩이길이로 저고리품과 직선배래 소매에 여유가 있으며 연 날리기 편하도록 소매가 위로 끌어올려져 있고 흰색동정이 달려있다. 흰색바지는 허리를 여민 후 허리말기부분을 아래로 꺾어 접어내리고 있는데 이 역시 지금의 남자바지 착용방법과 같은 방법이며 발목부분의 대님여밈과 바지통도 지금의 남자바지와 비슷하다. 흰색 버선과 빨간색 혜를 신고 있다.
오른쪽 남자아이도 뒤로 땋아 내린 머리를 댕기로 묶고 있다. 연두색 두루마기는 정강이길이로 품과 직선배래 소매의 여유가 적당하다. 흰색 바지는 발목 부분을 대님으로 여몄으며. 흰색버선과 갈색 혜를 착용하고 있다.
놀이의 소품으로 빨간색과 노란색의 사각형의 방패연 형태와 얼레가 등장하며 연이나 얼레의 모습은 오늘날 어린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습과 거의 같은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두루마기 착용을 보아 오늘날 정월대보름날 연놀이를 하는 것처럼 당시에도 연날리기는 추운 계절에 주로 하였던 야외놀이로 추측된다.
줄을 타고 있는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남자아이는 머리에 고깔을 착용하고, 한삼이 달린 듯한 매우 긴 소매의 포를 착용하고 있다. 둥근 깃을 하고 있는 포는 옷자락이 뒤로 날리고 있으나 그림 상에서 어떤 종류의 포를 착용했는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저고리는 바지와 같은 색상으로 엉덩이길이를 하고, 바지는 무릎아래에서 행전으로 정강이부분을 여며 줄을 탈 때 동작하기 좋도록 무릎윗부분은 여유가 많고 발목주위는 긴박하게 여며져 있다. 바지허리는 다른 색상의 허리끈으로 여미고 나머지 끈은 앞에 늘어뜨려져 있다. 줄을 타기 위해 흰색 버선만 착용하고 있다. 놀이의 소품으로 고깔모자, 긴 한삼, 줄 등이 등장하고 있다.
Fig. 5는 팽이를 치고 있는 시골어린이들 모습의 그림으로 이는 겨울철에 얼음판 위에서 채찍으로 쳐서 돌리며 하는 놀이로 특별한 게임 방법은 없다. 팽이는 철로 된 촉이 있고, 박달나무라는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Stewart, 1895/2003).
왼쪽 팽이를 돌리고 있는 남자아이는 머리를 뒤로 땋아내려 갈색 말뚝댕기 같은 것으로 머리를 묶고, 흰색동정이 달린 빨간색 저고리는 허리를 덮는 길이로 소매통이 넓지 않다. 그림 속 다른 인물들의 의복 차림과 겨울임을 고려할 때 착용한 의복이 간소하므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솜저고리가 아닌가 추측해본다. 소매통 사이로 녹색토시가 손목부위에 나타나고 흰색바지는 발목부분에서 대님으로 여미고 흰색버선과 짚신 또는 미투리를 착용하고 있다.
오른쪽 남자아이는 왼쪽아이보다 체격이 커 보여 나이가 좀더 많은 어린이로 생각된다. 머리에는 조선 초부터 19C 말까지 상하계층, 성별에 관계없이 두루 사용되던 방한모인 이엄을 착용하여 턱 아래에서 양쪽의 끈으로 여미고 있으며, 겉은 갈색 안은 빨간색을 하고 있다(Kang & Kim, 2008). 흰색안감의 자주색저고리는 엉덩이길이이며 저고리품과 소매통에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계절과 이엄 착용을 고려해 볼 때, 그리고 저고리 아랫단의 그림표현 등을 미루어보아 솜저고리로 추측된다. 넓은 깃에 흰색동정이 달려있다. 소매수구에 녹색토시가 드러나고 흰색바지는 초록색 허리끈으로 여며지고 매듭장식이 달린 빨간색 염랑도 착용하고 있다. 바지통은 넉넉해 보이며 발목에 대님으로 여며져 있다. 흰색버선과 짚신 또는 미투리를 착용하고 있다.
뒤쪽에서 구경하고 있는 남자아이는 이마를 보호하던 푸른색 말액이엄에 털가장자리 장식의 붉은색 볼끼를 달아 뺨을 감싸고 붉은색 끈으로 턱밑에서 매듭하고 있는데 상하색상이 다른 것으로 보아 풍차가 아닐까 생각된다(Kang & Kim, 2008). 녹색포는 무릎덮는 길이로 넉넉하고 품도 여유 있으며 목판깃인지 당코깃인지 알 수 없으나 오른쪽 겨드랑이 근처에서 고름으로 깊게 여며지고, 소매길이와 소매통에도 여유가 있으며 19C 말을 고려해 볼 때 두루마기로 추측된다. 흰색바지는 길이와 통에 여유가 있고 대님은 보이지 않으나 발목에서 대님 여밈하고 짙은 갈색 혜를 착용하고 있다. 차림새 등으로 짐작해 보아 이 아이는 가장 부유하거나 또는 양반가의 자제로 생각되어진다. 놀이의 소품으로 팽이, 채, 얼음판 등이 등장하고 있다. 이 놀이는 겨울에 남자아이들이 주로 하는 놀이로 혼자 또는 여럿이 할 수 있으며, 간혹 실내에서도 가능한 놀이이기도 하다(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2015).
Fig. 6은 제기차기 그림으로 제기는 목화천에 진흙이나 재를 채워서 꼭대기에 꿩의 꼬리 깃털을 가득 꽂은 편평한 공 모양으로 주로 상인들이 발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거리에서 하던 놀이이다(Stewart, 1895/2003).
뒷줄에 초립을 착용한 남자아이는 다른 두 아이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며 초립 밑에는 망건을 착용하고 검은색 끈으로 턱아래에서 여며져 나머지 끈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녹색포는 트임의 유무를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외관에서 중치막 같아 보이며 둥근 깃에 흰색동정이 목에 바싹 붙듯이 달려 있다. 고름은 좁고 작으며 소매는 직선배래이며 포는 무릎길이 정도이다. 빨간색저고리와 흰색바지를 입고 바지는 행전여밈으로 바지 앞에 내려온 빨간색 끈은 저고리고름인지 바지허리끈인지 알 수 없다. 흰색버선과 검은색 혜를 착용하고 있다.
왼쪽에서 제기 차는 남자아이는 길게 땋은 머리에 빨간색댕기로 묶고, 빨간색저고리는 품의 여유가 있고 엉덩이선길이로 등솔이 뚜렷하며 직선배래 소매는 여유 있고 흰색안감에 흰색 동정이 있고 우임으로 여며진 고름이 저고리길이 만큼 늘어뜨려져 있다. 흰색바지는 대님으로 여미고 흰색버선과 검은색 혜를 신고 있다.
오른쪽 남자아이도 길게 땋은 머리를 빨간색댕기로 묶고 엷은 자주색 저고리는 등솔이 뚜렷하고 엉덩이길이로 저고리품과 직선배래의 소매에도 여유가 있으며 흰색동정이 달려 있다. 흰색바지는 발목에서 대님으로 여미고 녹색허리끈으로 바지허리를 여몄는지 녹색의 끈이 늘어뜨려져 있다. 흰색버선과 검은색 혜를 착용하고 있다. 놀이의 소품으로 제기가 등장한다.
Fig. 7의 까막잡기 놀이는 술래인 사람의 눈을 가리는 놀이이므로 부상이 염려되어 주로 집에서 하는 놀이이다(Stewart, 1895/2003).
왼쪽 앞쪽 남자아이는 중간가르마와 뒤로 땋은 머리로 자주색저고리는 깊게 여며지고 당코깃에 엉덩이를 덮는 길이와 직선배래소매 모두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성장을 고려해 조금 더 크게 지어서 입힌 것이 아닌 가 추측된다. 흰색동정은 목을 바싹 감싸고 우임으로 고름이 여며져 있다. 흰색바지는 붉은색 허리끈으로 허리를 여미고 남은 끈과 함께 녹색염낭이 나란히 늘어뜨려져 있다. 염낭은 푸른색의 매듭장식이 가해져있다. 바지는 발목에서 대님으로 여며지고 흰색버선과 갈색 혜를 착용하고 있다.
뒤쪽에서 술래를 피하고 있는 남자아이도 중간가르마에 뒤로 땋은 머리를 하고 녹색저고리는 앞의 소년보다 짧게 느껴지나 겉섶선이 뚜렷하며 섶선위에 둥근 깃머리 부분이 지나가고 있다. 흰색동정이 달린 깃은 목을 조이는 듯 감싸고 있으므로 고대가 좁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흰색안감이 되어있다. 전체적인 외관은 체격이 빨리 성장하여 옷의 길이가 다소 짧아진 듯하다. 흰색바지는 빨간색 허리끈으로 허리를 여미고 발목은 대님으로 여며지고 흰색버선과 빨간색 혜를 착용하고 있다.
오른쪽의 술래가 된 아이는 뒤로 땋은 머리를 엷은 갈색의 댕기로 묶고 녹색의 긴 끈으로 눈을 가려 머리뒤쪽에서 묶고있다. 빨간색저고리는 여유가 충분해 보이며 등솔이 뚜렷하고 직선배래 소매도 여유가 있으며 엉덩이길이를 하고 있다. 흰색바지는 흰색대님으로 발목에서 여며지고 흰색버선과 갈색 혜를 착용하고 있다. 놀이의 소품으로 눈가리개용 수건이 등장한다.
Fig. 8의 널뛰기 놀이는 주로 여자아이들이 하는 놀이로 심지어 열아홉이나 스무살 된 여자들도 널뛰기를 하였다. 왼쪽의 아래쪽 여자아이는 뒤로 땋은 머리를 빨간색 댕기로 묶고 귀 옆머리를 조금 앞으로 뺀 것처럼 보인다. 쪽색회장저고리는 빨간색 끝동에 소매가 매우 좁고 가슴을 겨우 가릴 정도의 길이로 치마허리말기가 겉으로 드러나며 흰색동정이 달려있다. 빨간색 치마는 치마허리말기 끈을 이용하여 널뛰기에 치마길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치마자락을 한 바퀴 돌려 오른쪽 옆에서 걷어 올려져있어 정확한 치마길이를 알 수 없으나 긴 길이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흰색속바지가 드러나 보이며 속바지 아랫단은 제물단 처리한 것처럼 표현되어 있고 흰색 버선과 짚신을 착용하고 있다.
오른쪽 여자아이는 귀 옆으로 가늘게 머리를 땋은 후 뒤에서 나머지 머리 함께 땋은 귀밑머리형태로 빨간색 댕기로 묶고, 녹색몸판과 소매에 깃, 고름, 끝동 부분이 빨간색인 회장저고리로 가슴을 겨우 덮는 듯한 짧은 길이로 치마허리말기가 드러나 있다. 저고리품과 소매통은 긴박하고 여유가 없어 보인다. 둥근 깃에 흰색 동정이 V자 형태로 달려있다. 좁은 고름은 매듭 후 저고리길이를 넘지 않을 정도의 짧은 길이를 하고 있다. 연분홍색치마는 널뛰는 동작에 걸리지 않도록 치마허리말기의 끈으로 걷어 올려 길이를 알 수 없으나 길어보이지는 않는다. 드러난 흰색속바지의 아랫단은 제물단 처리하며 흰색버선과 짚신을 착용하고 있다.
널뛰기 놀이에서 사용되고 있는 놀이의 기구는 둥글게 말은 거적 같은 짚단과 두 사람이 충분히 서서 굴리고 뛸 수 있는 너비와 길이의 넙적한 나무판 한 장이 사용되고 있다.
Fig. 9는 여자아이들이 까막잡기 놀이를 하고 있는 그림으로 왼쪽 앞줄 술래를 피하고 있는 여자아이는 사내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뒤로 땋은 머리에, 쪽색저고리는 빨간색 끝동의 회장저고리로 길이가 짧고 품의 여유도 없어 보이며 겉섶선이 뚜렷하고 둥근 깃이며 고름은 좁고 짧아 저고리 조금 아래까지 늘어뜨려져 있다. 흰색동정과 깃은 고대가 좁은 듯 목에 바싹 붙여져 있으며 소매도 직선배래로 몸에 붙을 정도로 여유가 없다. 붉은색치마는 흰색치마허리말기 끈으로 여미고 걷어 올려져있다. 서민층 어린이들의 옷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소녀들의 치마길이는 속바지가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짧고 또한 짧은 치마를 행동할 때 편리하도록 허리끈으로 여미고 걷어 올렸음을 알 수 있다. 흰색치마허리말기는 저고리 아래에서 넓게 드러나 있으며 허리끈 역시 길게 치마 위로 늘어뜨려져 있다. 흰색속바지는 제물단에 발목으로 갈수록 바지통이 사선으로 좁아지며 발목길이로 흰색버선과 짚신을 착용하고 있다.
뒷줄에서 술래를 피하고 있는 여자아이는 뒤로 땋은 머리에 빨간색댕기를 묶고 빨간색저고리는 짧고 여유도 없는 쪽색끝동의 회장저고리로 둥근 깃에 흰색동정이 달려있다. 고름은 좁고 짧은 듯하며 소매는 여유가 없어 팔에 끼는 듯하다. 녹색치마는 흰색치마 허리말기의 끈으로 치마를 여미고 남은 끈은 치마 앞에 늘어뜨려져 있다. 치마길이는 걷어 올려져 무릎근처까지 내려온다. 흰색속바지는 발목길이로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며 제물단의 바짓단이 나타나고, 흰색버선과 짚신을 착용하고 있다.
술래로 눈을 가린 오른쪽 여자아이도 뒤로 땋은 머리를 빨간색 댕기로 묶고, 눈은 붉은색 끈으로 가린 후 머리뒤쪽에서 여미고 있다. 녹색저고리는 빨간색 끝동의 회장저고리로 흰색 동정이 달려있고 저고리길이는 짧고 품의 여유도 거의 없으며 직선 배래의 소매통 또한 좁다. 엷은 분홍색의 치마는 흰색 치마허리말기 끈으로 여며 뒷자락이 빠지지 않도록 걷어 올려져 다른 아이들보다 치마통의 여유가 많아 보인다. 걷어 올려진 치마는 종아리길이 정도로 흰색속바지가 드러나 있다. 속바지는 발목길이에 제물단으로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진다. 흰색버선과 갈색 혜를 신고 있다. 신발의 재질 차이와 치마길이와 치마통의 여유에서 나타나듯이 세 명의 어린이 중 다소 넉넉한 집안의 아이로 추측된다. 놀이의 소품으로 눈가리개용 수건이 등장한다.
Fig. 10은 세 명의 여자아이가 공기놀이와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는 그림으로, 공기놀이는 남자아이들이 5~7개의 돌이나 벽돌 조각 같은 것을 사용하여 땅 위에서 하는 놀이로 여자아이들은 동전으로 공기놀이와 비슷한 놀이를 하는데 이를 ‘자혜’라고 하였다(Stewart, 1895/2003).
동전을 가지고 놀고 있는 왼쪽 여자아이는 중간가르마에 뒤로 땋은 머리이며, 녹색저고리는 빨간색 깃, 끝동, 고름의 회장저고리로 목판깃에 고름은 좁고 짧다. 흰색동정은 목 주위에 긴박하게 달려있고 겉섶선이 뚜렷하고 저고리길이는 가슴윗부분까지 오는 듯 아래로 흰색의 치마허리말기가 드러나 보인다. 저고리품도 여유가 없고 소매도 팔에 끼는 직선배래를 나타낸다. 빨간색치마는 흰색치마허리말기의 끈으로 여며져 치마자락을 끈 사이에 끼워 걷어 올리고, 끈을 앞에서 묶은 후 늘어뜨렸는데 치마허리말기의 끈 길이는 가슴을 한번 돌려 치마를 고정한 후 늘어뜨릴 정도로 길이가 넉넉하다. 치마통은 가부좌 자세에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있다.
동전이 놓여 있는 베개는 양쪽으로 둥근 베개머리를 가진 상당히 높은 둥근 베개의 형태를 나타낸다. 쪽색 베개는 양쪽 가장자리의 빨간색 베개모와 베개를 연결하기 위해 한 방향으로 규칙적인 주름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흰색 베개닛으로 베개를 두르고 있다. 이 그림에서 당시의 베개 형태를 알 수 있으며, 실내 놀이를 할 때 공기나 동전이 바닥에 떨어질 때 발생하는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리를 흡수하는 부드러운 베개 등을 깔고 놀고 있는 모습에서 당시의 소녀들의 가정교육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오른쪽 앞쪽 여자아이는 머리를 뒤로 땋고 빨간색댕기로 묶고 있다. 빨간색 저고리는 쪽색끝동의 회장저고리로 길이가 짧아 치마허리말기가 드러나고 품도 여유가 적은 듯 당기는 주름이 많고 소매도 수구로 갈수록 더 좁아진다. 녹색치마는 흰색치마허리말기의 끈으로 치마를 한 번 감싸 앞에서 여미고 치맛자락 한 부분이 끈 사이로 걷어 올려지고 가부좌 자세를 덮을 정도의 치마통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
뒤쪽 여자아이도 중간가르마에 뒤로 땋은 머리를 하고, 엷은 쪽색저고리는 깃과 고름, 끝동이 빨간색인 회장저고리로 다른 두 아이보다 길이가 긴 듯 앞부분에 치마허리말기가 드러나 있지 않았다. 겉섶선이 뚜렷하고 넓은 둥근 깃에 비해 고름은 좁고 짧아 여밈 후 저고리길이 정도로 늘어뜨려져 있다. 흰색동정은 깃너비 1/3너비로 달려있고 저고리품과 직선배래 소매는 여유가 적다. 분홍색치마는 치마허리말기의 흰색 끈으로 한번 둘러져 앞에서 여며지고 길게 바닥까지 늘어뜨려져 있다. 치마통의 여유는 가부좌 자세를 충분히 덮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으며 치마길이는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충분히 덮고 있다. 세 명의 어린이는 모두 앉아있는 자세로 치마가 전체 다리를 덮어 속바지를 착용한 모습은 나타나있지 않다. 놀이의 소품으로 둥근모 베게, 여러 개의 공기 역할을 하는 동전이 등장하고 있다.
Fig. 11의 윷놀이는 당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놀이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방문이 빈번한 시기인 12월 15일~1월 15일 사이에 이 놀이를 많이 하였다고 한다(Stewart, 1895/2003).
왼쪽 앞줄 뒷모습의 남자아이는 뒤로 땋은 머리로 빨간색 댕기로 묶고 있다. 분홍색저고리는 등솔이 뚜렷하고 길이는 엉덩이선 가까이 내려오며 저고리품과 직선배래 소매는 여유가 있고 손목 부분에 쪽색토시가 빠져나와있다. 우임으로 여며진 고름이 오른쪽 옆선으로 흘러내려져 있다. 흰색바지는 가부좌로 앉아 있어서 착용형태는 알 수 없다.
왼쪽 뒷줄에 앉아 윷판을 정리하고 있는 남자아이도 중간가리마에 뒤로 땋은 머리를 하고 자주색저고리는 둥근 깃에 여밈이 깊은 듯 겉섶선이 한 쪽으로 치우친 것같이 섶선위에 깃머리 부분이 놓여 있다. 저고리길이는 알 수 없고 품의 여유는 적당하며 직선배래 소매는 팔꿈치 부분이 접혀져 조금 짧아 보인다. 흰색 바지는 발목에서 대님으로 여민 것 같다.
오른쪽 옆모습의 남자아이는 뒤로 땋은 머리를 빨간색 댕기로 묶고, 녹색저고리는 등솔이 뚜렷하고 저고리길이는 엉덩이선 가까이 내려와 있다. 저고리품과 직선배래 소매는 여유는 있으나 소매길이가 짧은 듯 빨간색 토시가 수구에 많이 빠져나와 있다. 흰색바지는 가부좌로 앉아 있어서 착용형태를 알 수 없다. 놀이의 소품은 엷은 황토색의 윷판과 빨간색 원통형태의 윷통 같은 것이 표현되어 있는데, 윷통일지 아니면 윷놀이로 더워지고 흥분한 아이가 토시를 벗어둔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든다.
Kim and Lee(2010)의 연구결과와 같이 평상시 남자어린이의 경우는 저고리와 바지, 여자어린이는 저고리와 치마를 입는다. 계절에 따라 옷의 종류와 옷감을 다르게 하였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상황에 따라 소재와 의복의 종류를 달리해서 입었음을 알 수 있으며, 본 연구자료 중 겨울용 놀이에서는 솜저고리, 저고리 여밈용 허리끈, 말액, 이엄, 토시 등을 착용하고 있으며 외투로 무릎길이 정도의 중치막, 전복, 두루마기, 소창의 등의 포를 착용하고 있다. 여자어린이의 경우는 실외, 실내놀이 전체에서 남자어린이만큼 대문 밖 놀이가 없어서인지 포류는 나타나지 않았다.
복식의 형태는 유아기에 입는 옷을 제외하면 외형은 성인복식의 형태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어린이를 성인과 마찬가지로 존중했으며, 성인의 축소판으로 생각하여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는 Kim and Lee(2010)의 연구결과와 같아 보인다.
4.2. 놀이 문화
기산의 11개의 삽화작품을 통하여 각 작품에서 등장하는 19C 말 우리나라의 놀이문화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19C 말의 놀이는 우리의 전통놀이 또는 민속놀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것으로 지금도 전승되어 행해지고 있는 놀이문화도 많이 남아있다(Kim, 2001). 민속놀이란 사람들이 민족의 전통적인 기질에 맞게 창조하고 지능과 체력을 향상하며 정서적이고 낙천적인 생활을 위하여 여럿이 모여 재미있게 노는 것을 말한다.
놀이는 놀이방법에 따라 개인놀이와 집단놀이로 구분할 수 있는데 본 연구에 사용된 19C 말 놀이그림의 대부분은 개인놀이의 그림이었으며, Sung(2009)과 같이 놀이의 장소에 따라 실내, 실외활동으로 구분하면 자혜놀이(공기놀이), 윷놀이는 실내 활동으로 나머지 줄타기, 무동 타기, 썰매타기, 연날리기, 팽이돌리기, 제기차기, 널뛰기, 눈 싸매기 등은 실외활동으로 나타나고 특히 눈 싸매기는 실외이긴 하나 눈을 가리고 하는 놀이이므로 보다 안전한 집안 마당에서 행해지는 놀이로 추측된다. Moon et al.(2009)과 같이 놀이의 성격에 따라 구분해보면 Table 1과 같이 신체단련형 놀이에는 널뛰기, 줄타기 등 도구를 사용하여 운동하면서 재밌게 노는 것들이 속하며, 경합쟁취형 놀이에는 자혜놀이, 제기차기 등과 같은 무엇을 걸고 집중적으로 노는 것으로 승부에 염두를 두고 상대적으로 노는 것으로 겨루기에서 오는 재미가 있는 놀이가 속하고, 다면복합형 놀이에는 윷놀이, 연날리기 등과 같이 세시 풍속이나 통과의례와 맞물려 전승되는 놀이가 포함되어졌다. 그러나 본 연구자료의 그림에서는 모의재현형 놀이라는 흉내놀이로 놀이의 형태나 노동의식을 모의적으로 표출할 때 보이는 놀이는 어린이놀이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놀이의 참여대상자에 따라 구분하면 Table 2와 같이 성인남자와 남아들이 함께하는 놀이에는 줄타기, 썰매타기, 무등 등의 놀이로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놀이형태가 있으며 남자어린이들이 즐겨하던 놀이는 어린아이부터 미성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남자아이가 그림에 나타나며 놀이의 종류에는 연날리기, 팽이 돌리기, 제기차기, 눈 싸매기, 윷놀이 등이 있으며 이 모든 놀이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놀이들이다. 여자어린이들이 주로 하는 놀이는 널뛰기, 눈 싸매기, 자혜놀이(공기놀이)로 이들 놀이도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놀이들이지만 행해지고 있는 횟수나 기회가 다소 차이 날뿐이다. 그리고 이 놀이들은 Choi(1998)의 연구에서처럼 남자아이, 여자아이, 어른 구분 없이 서로 바꾸어서 할 수 있는 놀이도 있다.
이처럼 19C 말 풍속화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놀이문화를 살펴보면 줄타기와 같이 기예를 요구하는 다소 전문가적인 놀이와 썰매타기와 같은 계절적인 놀이는 오늘날 보다 전문적인 분야의 놀이로 그리고 전문적인 도구가 필요한 계절놀이로 변화되었으나, 나머지 놀이인 무동, 눈 싸매기, 제기차기, 자혜놀이(공기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윷놀이, 팽이 돌리기 등은 오늘날까지 어린이끼리 또는 어른들과 함께 행해지고 있는 놀이들로 전통놀이의 맥을 이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결 론
풍속화는 그 시대의 서민적 생활 모습을 화폭에 담고 있으며 그 시대의 생활상을 리얼하게 나타내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시대상이 표현된 회화에서는 당대의 생활 모습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다,
스튜어트 컬린의 한국의 놀이라는 책 속에 삽입된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11점을 중심으로 19C 말 당시의 놀이문화를 통한 생활모습과 풍속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아이 19명, 여자아이 8명의 인물들이 착용하고 있는 일반 복식의 특징을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았다.
먼저 생활 속에 함께하는 19C 말 당시의 어린이놀이는 첫째, 참가하는 대상에 따라 남자어린이놀이, 여자어린이놀이, 어른과 함께하는 놀이로 세분화할 수 있으며, 남자어린이의 놀이는 연날리기, 팽이치기, 면차기(제기차기), 눈 싸매기(까막잡기놀이), 윷 뛰기(윷놀이) 등이 있으며, 여자어린이의 놀이로는 널뛰기, 까막잡기놀이, 자혜뛰기(공기놀이) 등이 있다. 주로 어른과 남자아이가 함께하는 무동, 썰매타기, 줄타기 등이 있었다.
둘째, 놀이의 성격에 따라 널뛰기, 줄타기 등의 신체단련형 놀이, 면차기(제기차기), 자혜뛰기(공기놀이) 등의 경합쟁취형 놀이, 윷놀이, 연날리기 등의 다면복합형 놀이가 있으나 모의재현형 놀이는 본 연구 자료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린이 복식에 관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남자어린이는 머리를 중간가르마에 뒤로 땋아 댕기로 묶고, 쓰개류로 고깔이나 초립, 풍차, 이엄, 머릿수건, 등을 착용하였다. 포류는 무릎길이로 소창의, 중치막, 전복, 두루마기가 착용되었으며 색상은 녹색, 연두색, 자주색, 분홍색을 착용하였다. 저고리는 허리를 덮는 엉덩이길이정도로 품과 소매에 여유가 다소 있으며 색상은 청색, 빨간색, 자주색, 엷은 자주색, 녹색, 분홍색 등이 사용되며 어른복식보다 어린이 복식의 색상이 다양하고 화려하였다. 주로 둥근 깃이며, 긴칼깃, 당코깃도 나타나고 모두 흰색 동정이 달려있으며 좁은 고대로 긴박하게 여며지고 고름은 좁고 짧았다. 바지는 모두 흰색바지로 표현되고, 녹색, 청색, 빨간색 등의 바지와 다른 색의 허리끈으로 여몄다. 흰색 버선을 착용하고 신은 짚신, 미투리 또는 검은색, 빨간색, 갈색의 혜와 썰매용 설말을 착용하였다. 그 밖에 녹색, 쪽색, 홍색의 토시, 매듭장식이 달린 염랑도 착용하였다.
조선 후기 남자아이의 일상복은 저고리와 바지를 기본으로 착용하고, 저고리의 형태와 착용법은 성인 남성의 저고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색상은 분홍색, 녹색, 빨간색 등이 많이 나타났고, 바지의 색상은 흰색을 중심으로 한 담색계열이 주를 이루는 특성을 나타내었으며, 포류는 Hong(2005)의 연구에서처럼 19C 말 갑신의복개혁 등으로 대부분의 포들이 두루마기로 대체됨에 따라 다양한 단색의 두루마기를 야외에서 착용한 모습이 많이 나타났다.
여자어린이는 머리를 중간가르마에 뒤로 땋거나, 귀밑머리와 함께 뒤로 여며 땋고 빨간색 댕기로 매듭하며, 귀옆머리를 조금씩 빼내어 장식을 하고 있다. 당시 성인여자와 마찬가지로 저고리는 가슴선이 드러날 정도로 짧고, 품과 소매통이 좁고, 고대도 좁아 깃이 긴박하게 여며지며 흰색 동정이 모두 달려있다. 깃은 대부분 둥근 깃이나 목판깃도 있었다. 고름도 좁고 짧다. 저고리는 모두 회장저고리로 깃, 끝동, 고름에 다른 색을 사용하거나, 끝동만 다른 색을 사용한 형태이다. 저고리의 색상 조합(저고리색/회장색)은 쪽색/빨간색, 녹색/빨간색, 빨간색/쪽색과 같은 조합이다. 치마는 저고리와 대비되는 색상으로 빨간색, 녹색, 분홍색 등을 착용하고 있으며, 치마통의 여유가 많고 오른쪽 자락이 왼쪽으로 감싸게 착장하고 있다. 흰색치마허리 말기의 끈으로 가슴을 감싸고 다시 치마를 감싸 거들치마처럼 착용하고 있어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소 짧아 보였다. 모두 흰색 속바지가 치마 아래로 드러나게 착용하고 흰색 버선에 짚신, 검은색 혜, 갈색 혜를 착용하고 있다.
조선 후기 여자아이의 일상복은 저고리와 치마가 기본 복식으로, 조선 후기 성인여자저고리와 같이 가슴언저리까지 길이가 내려왔으며 단색보다 배색한 회장저고리를 착용하고, 거들치마처럼 허리에 끈을 묶은 형태로 길이를 짧게 하여 보행에 편리하도록 하는 특성을 나타내었으며, 여자아이들은 실내놀이를 하고 있어 두루마기와 같은 포의 착용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여자아이들은 두루마기와 같은 포를 주로 방한용으로 착용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이처럼 어린이 복식이 성인복식형태와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어린이를 성인과 마찬가지로 동질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했음을 보여주는 예로 추측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19C 말의 풍속화 속에서 나타난 당시의 어린이의 놀이문화를 통한 생활상과 복식을 살펴본 결과 남자어린이 저고리와 바지의 형태는 지금의 남자한복의 형태와 거의 같으며 전통 남자한복의 착용방법은 지금까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변함없는 우리복식의 고유성이 전통복식의 독창성이라고 생각되었다. 여자어린이의 치마저고리는 성인여자 치마저고리와 같이 시대의 상황에 다소 길이나 품의 여유에 있어 변화가 생겼고 착용법의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지금의 한복과 변화가 없었다.
1886년 외국인에 의해 의뢰되었던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를 통해 19C 말 당시 생활 속의 어린이 놀이문화 모습과 어린이 복식을 조사함에 따라 당시의 생활상과 우리 복식의 미적인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단지 한 사람의 작품으로 전체를 확대 해석하시엔 다소 무리가 있으리라 생각도 되지만, 이러한 조사 자료가 현대 어린이 놀이문화와 한국의상에서 응용되어 우리 한복을 어린이들에게 올바르게 전승하고 생활 속의 우리 옷과 놀이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데 기초자료로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5학년도 영산대학교 교내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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